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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보다도 베니스였어요”

학기 중 2026 베니스 비엔날레로 향하다

박은수 실습기자

대학생 이윤(서울대학교 조소과 3학년)은 학기 중 일탈하듯 비행기에 올라 베니스로 향했다. 공부보다도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고 싶은 충동이 더 커서였다. 기대와 피로, 그리고 그가 보았던 ‘베니스’와 ‘비엔날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2026 베니스 비엔날레를 찾은 이윤(23) 씨가 전시장 내 작품 앞에 서 있다.

학기 중에 무리해서 베니스행 비행기를 탄 이유를 묻자, 이윤 씨는 단순하게 답했다. 비엔날레는 2년에 한 번이고, 오픈 주간에는 작가들이 직접 전시장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실제로 그는 운 좋게도 한국관 오픈식 직전 최고은 작가와 노혜리 작가를 비롯한 한국관 전시 관계자들을 현장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계획은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정작 베니스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비엔날레만이 아니었다.

“도시 전체가 전시장이었다”, 베니스 곳곳을 채운 미술들

베니스에 도착했을 때 이 씨가 처음 느낀 것은 비엔날레가 아니라 도시 자체였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물길, 화려하지만 인위적이지 않은 다채로운 색감. 그리고 도시 곳곳에 들어찬 전시들. 비엔날레 기간의 베니스에는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의 본전시 외에도, 유서 깊은 건물과 골목 곳곳에서 수많은 개인전과 특별전이 동시에 열린다. 이 씨는 그 밀도에 먼저 압도됐다고 말했다.

비엔날레만 중요한 줄 알았는데, 도시 전체에서 열리는 전시들의 밀도가 정말 높았어요. 오히려 비엔날레를 못 보더라도 주변 전시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작은 도시 안에 동시대 미술이 응축된 상태. 어디를 걷든 전시가 있었고, 어느 건물에 들어서든 작업이 있었다. 그리고 이 가득한 밀도를 차치하고서라도 각 전시들이 너무나도 양질이었다고 덧붙였다.

베니스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에 위치한 피노 컬렉션 전시장 전경.

도시 베니스에서의 ‘원픽’은, 아니쉬 카푸어의 개인전

이 씨에게 도시 곳곳의 전시들 중 가장 기억에 강하게 남은 것은 아니쉬 카푸어의 개인전이었다. 실제로 귀족의 궁전으로 사용됐던, 역사적인 건물 전체를 자신의 작업으로 채운 전시였다.

"내부 공간이 크고 층고도 높아 그의 거대한 작업들이 공간과 합쳐져 압도적인 시너지를 내뿜었던 것 같습니다."

카푸어 전시장은 기존의 화이트큐브 안에 작품을 배치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수백 년의 시간이 쌓인 건물이 그 자체로 맥락이 되고, 그 위에서 카푸어의 작업은 전혀 다른 무게를 갖게 된다. 이 씨는 이것이 베니스라는 도시에서만 가능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비엔날레와 별개로, 베니스의 개별 전시들을 음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베니스에 올 이유가 충분했다.

베니스 팔라초 만프린(Palazzo Manfrin)에서 열린 아니쉬 카푸어 전시 전경. 관람객들이 설치 작품 사이를 거닐며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동시대 미술이 한 공간에, 그러나 너무 방대해

비엔날레 본전시에서는 또 다른 감각이 찾아왔다. 이 씨는 그날을 "태어나서 시간 내에 가장 많은 작업들과 작가들을 본 날"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에서 프리즘이나 여러 아트페어를 돌아본 경험이 있었지만, 그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밀도였다.

거대한 공간에 밀도 높은 수백 개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보니 후반부에는 시간에 쫓겨 작업들을 거의 지나치듯이 봤고, 너무 많은 정보량으로 인해 나중에는 하나의 과제를 끝낸다는 생각으로 기계적인 관찰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그것이 비엔날레의 결함이라기보다 형식의 특성이라고 봤다. 개인전이 하나의 작업 세계를 깊게 파고드는 방식이라면, 비엔날레는 동시대 미술계의 흐름 전체를 한 공간에서 조망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2026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 기간, 전시장 내부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관람객들로 붐볐다.

“늘 봤던 느낌이긴 해요”, 반복되는 주제와 형식

이 씨는 비엔날레의 가장 큰 의의를 이렇게 정리했다. 지금 미술계에서 가장 뜨겁게 대두되는 담론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올해는 그 기대가 온전히 채워지지는 않았다고도 솔직하게 말했다.

이번 비엔날레는 언제나 봤던 주제가 늘 그 자리에 있는 느낌이라,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것만큼 신선하게 다가오는 작업들이 적었습니다. 그렇다고 신선해야만 좋은 작업이라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요.

특히 국가관 전시에서 그 인상이 강했다. 민족성, 퀴어 담론을 전면에 내세운 국가관이 많았고, 같은 주제가 해를 거듭해 반복되는 풍경은 어느 정도의 피로감을 남겼다고 했다. 국가마다 전시관이 구분된다는 특성이 오히려 해마다 비슷한 담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아닐지, 조심스러운 의문도 덧붙였다. 물론 주제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아니었다. 그 안에서도 재밌게 본 작업들이 많았다고 했다. 다만 이 씨에게는 주제 외에도 또 다른 의문이 있었다.

디렉터의 입김이 작가보다 더 전면에 내세워진 몇몇 전시들을 보면서, 저 작가는 저렇게 해석되고 싶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국가관 전시는 본래 개인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구조다. 디렉터가 주제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참여 작가를 선정하곤 한다. 이 씨는 그 과정에서 디렉터가 해석한 작가의 모습과 작가 스스로 보여주고자 한 모습 사이에 어떤 괴리가 있진 않을지 생각하며 국가관 전시를 감상했다고 말했다. 작업의 해석에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크게 작용하는지, 전시를 구성하는 각 관계자들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 이번 비엔날레가 그에게 남긴 질문들이었다.

그럼에도, 미술 전공생이라면 한 번은

그 모든 피로와 의문에도 불구하고, 이 씨는 비엔날레를 강하게 추천했다. 다양한 레퍼런스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는 실용적인 이유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결의 메시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풀어나가는 작가들을 보며 동기를 얻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많은 작가들이 열정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작가의 길을 고민하는 학생에게 하나의 답처럼 다가왔다.

모든 비엔날레를 갈 필요는 없지만, 특히 미술 전공생이라면 인생에서 한 번쯤은 꼭 가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길이 도로를 대신하는 도시, 역사적인 건물이 전시장이 되는 도시, 수백 명의 작가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도시. 베니스는 비엔날레보다 컸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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