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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떠올릴 때 지금이 보인다

청춘에게 영정 사진을 권하는 사진 작가 세이큐

정민주 실습기자

영정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가가 있다. 그것도 노년이 아닌 청춘들을 위해서다. 목사이자 사진가인 세이큐(51세, 본명 김세규) 작가의 이야기다.
영정 사진은 대개 장례식장에 놓일 마지막 얼굴로 여겨진다. 그러나 세이큐 작가는 이 사진을 죽음을 준비하는 사진이 아니라, 지금을 더 잘 살기 위해 찍는 사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이 사진을 ‘Young情 사진’이라 부른다. 그림자 영(影)과 족자 정(幀)의 영정(影幀)을, 젊음을 뜻하는 ‘young’과 뜻 정(情)자로 다시 읽는 것이다.
그가 청춘에게 영정 사진을 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교와 경쟁 속에서 지친 이들에게, 영정 사진은 잠시 멈춰 자기 삶을 돌아보게 하는 쉼표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음은 세이큐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서울 봉천동에 자리한 ‘허그 스튜디오’. 세이큐 작가가 청춘들의 영정 사진을 찍는 공간이다.

세이큐 작가가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Q. 청춘과 영정 사진, 굉장히 낯선 조합이다.

A. 그렇다. 근데 영정 사진은 청춘들한테 꼭 필요한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가까이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젊은 친구들이 생기면서, 죽고 싶다는 말이 내 귀에 굉장히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살게 해주고 싶었다. 우리 사회의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때문에 청춘들은 터질 듯이 부풀어 있다. 영정 사진은 그 바람을 빼주는 거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외부에서 주입되는 위로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것. 영정 사진은 죽음을 준비하는 사진이 아니라, 지금을 더 잘 살게끔 해주는 사진이다.

Q. 영정 사진이 어떻게 지금을 더 잘 살게 하나.

A. 과속 방지턱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으며 한 번 덜컹거려 보는 거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걸 환기하면서 한 번 덜컹거릴 때, 본능적으로 우선순위를 재배열하게 된다. ‘내가 지금 진짜 중요한 걸 하고 있나. 이게 그럴 가치가 있나. 내가 놓치고 있는 건 없나.’ 50년 정도 인생을 살면서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진실은 ‘우린 죽어’ 이것 하나밖에 없더라. 우리가 가진 유한성을 상기시키면서 뒤를 한 번 돌아보는 것, 그 자체가 인생의 쉼표가 된다.

Q. 영정 사진을 전문으로 찍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나이가 들면서 주변 친구 부모님들 장례식에 자주 가게 됐는데, 그때마다 영정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영정 사진으로 쓰겠다고 마음먹고 찍은 사진을 실제로 쓰는 경우가 별로 없더라. 핸드폰 사진에서 얼굴만 빼오거나, 여든에 돌아가셨는데 40대 때 사진을 쓰거나. 사람들한테 영정 사진 얘기를 꺼내면'재수 없다', '아직 찍을 나이가 아니야' 하고 떠밀어내고. 그런데 저 안에 분명한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직접 찍어주는 스튜디오를 차렸는데, 쉽지가 않았다.

Q. 영정 사진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나.

A. 그렇다. 그래서 처음에는 변화구를 던졌다. '슈퍼 시니어 프로필', 'memento mori portrait(죽음을 기억하는 초상 사진)' 같은 이름으로 세상에 노크를 해봤는데 번번이 외면당했다. '영정'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임팩트를 다 비껴내더라. 그러던 어느 날, '그림자 영(影)'과 ‘족자 정(幀)’으로 읽히던 영정이 젊음을 뜻하는 'young'과 '뜻 정(情)'자로 탁 바뀌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가 나한테는 유레카였다. 영정이라는 말 안에 이미 답이 있었던 거다. ‘young’이 들어가는 순간, 영정 사진의 대상이 시니어여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같이 깨졌다.

Q. 촬영은 어떻게 진행되나.

A. 먼저 'Young情한 질문들'이라는 질문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중물 같은 거다. 장례식 때 틀고 싶은 음악이 있는지, 어떤 꽃을 받으면서 친구들과 헤어지고 싶은지,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택이 무엇인지 등을 물어본다. 그중 흥미로운 답변을 위주로 대화를 이어가면서 촬영을 진행한다.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할 때 본모습이 나온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을 찍다 보면, '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알아가게 된다.

Q.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

A. 매년 생일 때마다 찍으러 오는 분이 있다. 영화 제작자인데, 영화 촬영을 준비하면서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매년 영정 사진을 찍으면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하더라. 내가 원하는 영정 사진의 역할이 바로 그거다. 내 삶을 돌아보는 쉼표.

Q. 실제로 청춘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나.

A. 많지는 않다. 그래서 내가 직접 찾아가고 있다. 사진가이면서 동시에 목사이기도 해서, 교회 청년부들을 찾아가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솔직히 길을 걷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붙잡고 영정 사진을 찍어주고 싶어 미치겠다. 더 많은 청춘들이 스튜디오에 와서 영정 사진을 찍어봤으면 좋겠다.

Q. 영정 사진 촬영이 자살 예방 캠페인을 위한 기부로 이어진다고 들었다.

A. 촬영 수익금 일부는 비영리 법인인 허그 센터의 자살 예방 캠페인을 위한 후원금으로 쌓이고 있다. 어릴 때 부모님께 '얼굴값 좀 하고 살아라'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돌이켜 보면 그 말이 참 묘하다. 영정 사진을 찍으며 치른 얼굴값이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살리는 데 쓰인다면, 이 사진이 단순히 죽음을 준비하는 사진에 그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누군가를 살리는 일로 이어지는, 그런 선순환을 만들고 싶었다.

Q. 본인에게 영정 사진은 결국 어떤 사진인가.

A. 살면서 꼭 있어야 할 사진이다. 증명사진도, 여권사진도, 이력서용 사진도 모두 용도가 있다. 그런데 용도가 아니라, 내 삶을 위한 사진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촬영을 시작할 때 항상 먼저 묻는 질문이 있다. '요즘 잘 살고 계세요?' 시원하게 대답하는 분도 있고, 어떤 기준으로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분도 있다. 영정 사진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번 던져보는, 나를 위한 사진이다.

“내 경쟁자는 성형외과와 피부과” ‘나다움’을 찍는 사진가 세이큐

세이큐 작가(51세, 본명 김세규)는 자신의 경쟁 상대로 성형외과와 피부과를 꼽는다. 더 예쁘게, 더 멋지게 찍어주는 사진관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금의 자기 얼굴을 좋아하게 만드는 사진관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는 “얼굴에는 자존감과 자신감,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이 비벼져 있다”며 “자기가 살아온 시간을 자기 스스로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운영하는 사진관 이름이 ‘허그’ 스튜디오인 이유다.
사실 세이큐 작가의 출발점은 사진이 아닌 영화였다. 그는 중앙대 연극영화과에서 영화 제작을 전공하고 영화사 제작실에서 일했다. 그러다 31살에 떠난 유학길에서, 전공을 영화에서 사진으로 바꿨다.
귀국 후 배우 프로필 전문 ‘세이큐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그는 배우들에게 같은 요구를 반복해서 들었다. “나답게 찍어달라.” 보이지 않는 ‘나다움’을 사진에 담는 것이 그의 과제가 됐다. 그가 찾은 답은 ‘말하는 얼굴’이다.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나다워진다는 판단에서다.
영정 사진은 이 작업의 연장선이다. 사진가로 나이가 들면서 그는 ‘오래 할 수 있는 사진’을 고민했고, 영정 사진이 그 답이 됐다. 대상은 시니어가 아닌 청춘이었다. 비교와 경쟁에 짓눌려 자기 얼굴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는 이들이야말로 그가 찾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존에 찍던 인물 사진과 영정 사진의 결과물에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다 ‘나 같이’ 나오게 된다.” 그가 찍는 것은 언제나 ‘나다움’이다.

세이큐 작가의 영정 사진

실제 촬영자들은 영정 사진을 어떻게 경험했을까. 세이큐 작가와 작업한 박준휘 씨, 안식 씨에게 촬영 경험을 물었다.

매년 생일마다 쌓이는 일기장, 박준휘 씨의 영정 사진

50대 영화 제작자 박준휘 씨는 매년 생일마다 영정 사진을 찍는다. 지금이 제일 젊은 모습이니, 매년 자신이 어떻게 변하는지 기록하기 위해서다. 생일은 그에게 해마다 자신의 변화를 확인하는 기준점이다. 그렇게 쌓인 사진들은 그의 일기장이 됐다.
그는 “10년 전 사진을 보면 지금이랑 많이 달라져 있다”며 “이때는 걱정이 많았구나, 요즘은 즐겁구나 하는 게 얼굴에서 보인다”고 말했다. 박 씨에게 영정 사진은 삶을 단번에 바꾸는 극적인 계기는 아니었다. 대신 매년 자신의 표정을 기록하는 일 자체가 그에게는 의미가 됐다.
매년 사진관을 다시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촬영 과정이다. 카메라 앞에 앉아 포즈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셔터가 눌리기 때문이다. 그는 “동네 카페에서 얘기하듯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미처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그에게 영정 사진은 매년 쌓이는 자기 자신의 솔직한 기록이다.

박준휘 씨의 영정 사진 안식 씨의 영정 사진

기억 속을 파고드는 시간, 안식 씨의 영정 사진

30대 직장인 안식 씨에게 영정 사진은 처음엔 낯설고 무거운 주제였다. 교회에서 세이큐 작가를 만난 그는 영정 사진이 삶의 의미를 다루는 방식에 흥미를 느껴 촬영을 결심했다. 그는 영정 사진을 찍기 전까지 자기 인생을 그렇게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가 가장 생소하게 느낀 것은 대화 속에서 사진이 찍힌다는 점이었다. 그는 “보통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경직되는데, 대화를 나누는 중에 촬영이 이뤄지니 어색함이 없었다”며 “대화 내용도 내 인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말했다. 촬영 전 작성한 질문지가 대화의 출발점이 됐다. 그는 “스스로 잘했다, 애썼다고 생각하는 때가 언제냐”는 질문을 받고 회사생활에서 어려운 순간을 버텼던 경험을 떠올렸다. 그는 “대화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내 기억 속을 파고드는 느낌이었다”며 “스스로에게 잠기게 되는 경험이 좋았다”고 말했다.
완성된 사진을 봤을 때 그는 안도감을 느꼈다. 안 씨는 “찍힌 내 얼굴이 편안해 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며 “지금까지의 나를 회고하는 느낌도 들었다”고 했다. 그에게 영정 사진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제대로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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