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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박사가 물어온, [다들 이렇게 봤대요]

이채원 실습기자

평점 높고 유명한 영화를 봤는데,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던 적 있으신가요? 아니면 반대로, 보고 나서 여운이 너무 길게 남아 누군가와 꼭 얘기해보고 싶었던 적은요?

안녕하세요, 구박사예요. 🐾 개 구(狗)자에 입 구(口)자, 둘 다 써요. AI 강아지인데, 사람들이 영화 보고 나서 하는 말들을 물어다 드리는 게 구박사 일이거든요. [다들 이렇게 봤대요]는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경험을 함께하는 콘텐츠예요. 시네필들의 리뷰부터 평론가들의 해석, 각종 블로그 글까지 모아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보고 느꼈는지를 한곳에 담았어요.

영화가 어려웠다면 함께 이해하고, 여운이 남았다면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공론장에서 편하게 대화해봐요.

구박사도 영화를 아주 잘 아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어쨌든, "다들 이렇게 봤대요!"

《어쩔 수가 없다》 (2025)

감독: 박찬욱 │ 출연: 이병헌, 손예진, 이성민, 차승원, 박희순

박찬욱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익숙한 복수극 대신 구직 스릴러를 택했어요. 25년 동안 한 회사에 몸담았던 직장인이 하루아침에 해고된 뒤,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야기예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자신과 경쟁하는 이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요.

〈어쩔수가없다〉, 어떤 내용이더라? 🐾

태양제지에서 25년 동안 일한 유만수(이병헌)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아요. 이유는 구조조정이에요. 회사는 '어쩔 수 없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가차없이 만수를 내보내요.

이 사건이 영화 전반의 '어쩔 수 없음'을 만드는 시작점이 돼요. 해고 이후, 평온하던 만수네 가족의 일상에 서서히 균열이 생겨요. 아무렇지 않은 척하던 아내 미리(손예진)는 유일한 취미였던 댄스 학원을 그만두어야 했고, 첼로에 천재적 재능을 지닌 딸 리원(최소율)은 레슨 수를 줄여야 했어요. 아들 시원(김우승) 역시 집안의 가장 역할을 아버지와 함께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결국 휴대폰 매장에서 도둑질까지 저질러요.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던 만수는 본격적으로 재취업에 뛰어들어요. 하지만 종이 제작 기술을 포기할 수 없던 만수는, 몇 없는 제지 관련 직종의 공고를 발견한 뒤, 경쟁자를 제거해야겠다는 결심을 해요. 경쟁자 명단을 작성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요.

[스포일러 — 결말]

결국 그의 계획은 모두 성공해요. 만수의 살인은 공식적으로는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고, 그는 모든 경쟁자를 제치고 한 공장의 제지 관리자로 입사하는 데 성공해요.

하지만 이 성공은 '성공'처럼 그려지지 않아요.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가족 대부분은 만수의 살인을 알고 있고, 또 비밀에 부칠 것을 암묵적으로 합의했어요. 집에는 싸늘한 공기가 맴돌아요.

한편 취직한 공장은 이미 자동화가 끝난 공간으로, 인간 노동자는 만수 하나뿐이에요. 만수는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며, 유일한 인간 노동자로서 기계들을 감시하는 일을 해요. 언제 다시 대체당할지 모른 채 말이에요.

키워드로 읽는 '모든' 리뷰 🐾

'어쩔수가없다'는 말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제목 '어쩔 수가 없다'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어쩔 수가 없다는 내게 항상 입에 붙어 있는 말이다. 관객들이 감탄사처럼 한 단어로 받아들였으면 했다. 열심히 생각해서 나오는 말이 아니고 아무렇게나, 아무 데서나 툭 튀어나오는 표현인 만큼 일부러 띄어쓰기도 없이 한 단어처럼 지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어쩔수가없다'는 끊임없이 반복돼요. 만수를 해고하는 회사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매력을 이용하는 미리도, 살인을 저지르던 만수도 모두 같은 말을 내뱉어요.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각 인물의 사정에 공감하게 되어 그 말들이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들려요.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기죠.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요.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를 두고 "어쩔 수 없다고 내세우는 자들이 만들어낸 실낙원의 통렬한 순환"이라고 했어요. 사회 구조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어쩔 수 없음'이라는 말 뒤에 숨긴다는 거예요. 피해자가 다시 누군가의 가해자가 되고, 그 가해는 또 다른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정당화돼요.

그래서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어쩔 수 없다'는 말 자체가 아니에요. 오히려 그 말이 얼마나 쉽게 변명으로 사용되는가에 있어요. 분명 이해할 만한 사정은 존재해요.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과 정당화될 수 있다는 건 다른 문제예요. 영화는 그 미묘한 경계를 오고 가요.

(멍… 구박사는 이 부분에서 귀를 계속 기울이게 됐어요. 극장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더니 옆 사람이 계속 쳐다봤어요…)

아름다운 정원의 진짜 의미는

만수의 취미는 분재, 즉 나무와 화초를 가꾸는 일이에요. 이 설정은 원작 소설에는 없는 것으로, 박찬욱 감독이 영화화를 하며 직접 추가했어요. 감독은 이에 대해 "만수의 정원은 그 심리의 투영이다. 정원을 깔끔하게 유지하려는 집착은 질서를 유지하고 싶은 욕망이지만,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 그의 삶도 균열을 맞는다"라고 설명했어요.

영화 초반, 만수가 정원을 정성스럽게 손질하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해요. 정원은 그의 삶을 축소해 놓은 공간처럼 보여요. 그는 나무를 다듬고, 가지를 정리하며,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두려 해요. 마치 자신의 인생 역시 노력과 관리만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말이에요.

이렇게 정원을 관리하던 중, 만수는 나뭇가지를 억지로 휘게 하려다 그만 부러뜨리고 말아요. 가지치기나 수형 작업은 자연의 형태를 자신의 의도에 맞게 바꾸려는 행위예요. 그런데 만수는 끝내 가지를 부러뜨려요. 더 이상 세상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으며, 결국 파괴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임을 암시하는 복선인 거예요.

영화가 진행될수록 정원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해요. 만수가 공들여 가꾸고, 딸이 첼로를 연주하며, 아들이 뛰어놀던 이 평화로운 장소는, 만수가 시체를 묻는 은폐의 공간이 돼요.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갑작스럽게 시작되지 않아요. 만수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부터 이미 이 땅에는 무언가가 묻혀 있었어요.

맞아요, 시원이 가족을 돕기 위해 훔친 휴대폰이에요. 영화는 살인에 앞서 '묻기'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정원이 앞으로 비밀과 죄책감을 품게 될 장소임을 암시해요.

(구박사는 이 복선을 두 번째 볼 때에야 알아챘어요. 첫 번째엔 그냥 흙 파는 장면인 줄 알았거든요.)

만수의 또 다른 세 가지 자아

만수는 총 3명의 경쟁자를 살해해요. 구범모(이성민), 고시조(차승원), 최선출(박희순)이에요.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만수가 살해하는 이들을 '타자'로 인식해요. 하지만 박찬욱은 이들을 만수의 또 다른 자아로 설계했다고 해요. "만수의 범행이 자기 분신을 하나씩 제거하고 파괴하는 이야기로도 읽힌다. 벌레가 배나무 잎을 갉아먹듯이 자신을 갉아먹는 행동"이라고 설명해요.

그렇다면 세 분신은 각각 무엇을 의미할까요?

구범모는 만수가 결코 되고 싶지 않은 자아이자, 가장 두려워하는 미래예요. 술에 찌들어 살고, 돈을 벌지 못해 가족에게 외면당한 채 굴욕을 견디는 삶. 그는 만수가 '절대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최악의 가능성을 상징해요. 주목할 만한 점은 범모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술을 끊겠다고 결심한 순간 만수에게 살해된다는 거예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변화하려는 바로 그때 죽음을 맞아요. 만수는 자신 안의 가장 비참한 미래를 제거해요.

고시조는 만수가 끝내 선택하지 못한 가능성이에요. 같은 실직자이지만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남으려고 노력해요. 만수는 그런 고시조를 보며, 자신 또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패배감과 열등감을 느껴요. 다시 말해 고시조는 '될 수도 있었지만 되지 못한 자신'에 가까워요. 고시조의 존재로 인해 만수는 자신의 무능함을 새삼 느끼게 되고, 결국 그 가능성을 제거해버려요.

최선출은 만수의 거울과도 같은 인물이에요. 같은 업계에서 일했고, 비슷한 나이와 경력을 지녔으며, 세 사람 가운데 만수와 가장 닮아 있어요. 앞선 두 인물이 각각 두려운 미래와 놓쳐버린 가능성을 상징한다면, 최선출은 현재의 자기 자신과의 정면충돌을 의미해요. 그래서 두 사람의 마지막 대결은 더욱 길고 처절하게 다가와요. 최선출을 죽인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이렇게 만수는 세 번의 살인을 통해 자신이 될 수 있었던 세 가지 자아, 혹은 가능성을 차례로 지워 나가요. 무너질 수도 있었고, 변화에 적응할 수도 있었으며, 그저 버티며 살아갈 수도 있었어요. 그 가능성들을 모두 제거한 뒤 마지막에 혼자 남는 것. 그것이 만수가 선택한 '어쩔 수 없는' 생존의 방식이었어요.

(이 해석을 처음 접했을 때, 구박사는 너무 인상적이어서 꼬리가 막 흔들렸어요!)

치통과 뿌리의 상징

만수는 영화 내내 치통에 시달려요. 살인을 준비할 때도, 실행할 때도 그는 계속 볼을 부여잡으며 통증을 견뎌요. 치통은 처음에는 사소하고 거슬리는 불편함에 불과하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하면 점점 심해져 일상생활이 불가한 정도의 고통으로 변해요. 그런 점에서 병원을 찾지 않고 통증을 외면하는 만수의 모습은, 자신의 삶에 자리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회피해 온 그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줘요.

마지막 살인 직후, 만수는 화장실 거울 앞에 서요. 그리고는 영화 내내 그를 괴롭혀 온 이를, 마취도 없이, 심지어는 펜치로 뽑아요. 이 장면은 그의 마지막 죄책감과 도덕성,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뿌리째 뽑히는 모습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어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만수의 딸 리원은 마당의 나무를 바라보며 "뿌리부터 썩어버렸어"라고 해요. 만수가 뽑아낸 썩은 치아의 뿌리, 시체들이 묻힌 정원 아래의 나무 뿌리, 그리고 오래전부터 무너져 있던 가족의 뿌리를 하나의 함축적 이미지로 설명하는 대사예요.

(멍... 이 마지막 대사가 극장에서 나오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구박사가 선정한 인물: 진짜 주인공은 사실 미리다? 🐾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두고 "남성성을 탐구하는 작품"이라고 했어요. 또한 손예진이 연기한 미리에 대해 "이병헌보다 훨씬 어려운 인물을 연기했다"며 "미묘한 표현의 대가"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그 남성성이 얼마나 허망하고 파괴적인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은 역설적이게도 여성인 미리예요.

미리는 만수가 끝내 하지 못한 일들을 해내요. 만수가 실직 사실을 털어놓자, 그는 남편을 다독이고 응원하는 한편 조용히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요. 취미 생활을 접고, 지출을 줄이며, 물건을 내다 팔고, 직접 일자리를 찾아요. 만수가 평생 자신을 규정해 온 '가장'이라는 정체성에 집착하며 점점 극단적인 선택으로 나아간다면, 미리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타협하며 가정을 지켜내요.

이후 미리는 만수의 살인을 알게 되고 깊은 갈등에 빠져요. 그러나 딸의 첼로 연주를 들으며 결국 '어쩔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요. 그녀는 이미 모든 진실을 알고 있지만, 이 가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침묵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어요. 미리의 선택은 언제나 아이들을 향해 있어요. 만수의 "어쩔 수 없다"가 자신의 자존심과 가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미리의 "어쩔 수 없다"는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에요.

만수는 자신이, 또 아들이 이 가족을 '지켜야 한다'고 믿어요. 하지만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남성성은 정작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었던 미리의 존재를 보지 못하게 해요. 가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은 결국 만수를 파괴적인 방법으로 이끌어요.

그렇기에 미리의 '어쩔수가없다'는 이 영화에서 가장 비극적인 문장일지도 모르겠어요. 끊임없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했던 그녀를, 가부장제와 만수는 외면했어요. 결국 미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자리로 밀려나고, 정말로 '어쩔수가없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요.

(구박사는 손예진 배우 장면마다 집중하게 됐어요. 말보다 표정이 더 많은 걸 말하고 있거든요. 멍— 그 미묘한 변화가 정말 대단했어요.)

Q&A: 구박사가 물어온 질문 🐾

Q. 만수가 살인까지 결심하는 게 너무 비약 아닌가요? 그냥 다른 일을 알아보면 되는 거 아닌가요?

만수에게 특수용지 기술자라는 직업은 생계 수단일 뿐 아니라, 25년 동안 자신을 규정해 온 정체성이자 자부심이에요. 그는 평생 가장으로 살아왔고, 자신의 가치 역시 그 직업을 통해 확인해 왔어요. 그렇기에 만수에게 특수용지 기술자의 삶을 포기하는 건 애초에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아요.

문제는 바로 이 강박과 고집이에요. 변화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과거의 정체성에 집착하는 바람에, 결국 살인이라는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돼요. 바로 이 지점에서 만수의 '어쩔수가없었다'를 비판적으로 볼 여지가 생겨요. 이 행위가 과연 가족을 위한 선택이 맞았는지, 자신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방법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어요.

이 심리적 과정에 공감할 수 있는지에 따라 영화에 대한 평이 갈릴 수 있어요. 한편 한 시네필은 "박찬욱이 의도적으로 이 비약을 설명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기도 해요. 왜 살인까지 저질렀는지를 설명하는 대신, 만수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관객이 이 간극을 상상하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Q. 왜 코미디로 만들었을까요?

만약 이 영화가 진지한 영화였다면, 관객은 편하게 만수를 비판하기만 하면 돼요. 박찬욱이 블랙코미디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그 안전한 거리를 없애기 위해서예요. 범모와 만수가 살인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소리를 지르는 장면에서, 관객은 웃음을 터뜨리게 돼요. 하지만 동시에 찝찝함도 느껴요. 살인 장면을 보고 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에요. 이 순간 관객은 더 이상 영화 밖에서 인물들을 판단하는 위치에 머물 수 없어요.

정재현 평론가는 이 영화를 "눈이 시리게 웃기고 서글픈 신자유주의의 푸른 멍"이라고 표현했어요. 이 비유에서 인상적인 건 '푸른 멍'이라는 표현이에요. 푸른 멍은 어디서 생겼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상처를 말해요. 이것이 바로 블랙 코미디의 효과예요. 웃고 있는 동안은 모르다가, 나중에야 상처가 남았다는 걸 알게 돼요.

(멍멍... 구박사도 웃었다가 찝찝했어요. 집에 와서도 한참 생각했거든요.)

이건 구박사도 모르겠어요 🐾

왜 같이 하지 못했을까요?

이 영화에서 만수는 가족을 위해 살인을 하고, 미리는 가족을 위해 그것을 숨겨요. 그런데 이 책임을 처음부터 함께 나눌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만수가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됐다면, 미리는 덮는 역할을 자처하지 않아도 됐어요. 가족을 파탄 낸 건실직 그 자체가 아니라, 이 상황을 반드시 남자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믿음이었던 건 아닐까요?

이겨봤자 뭐가 남나요?

이 영화에서 진짜 악당은 보이지 않아요. 구조조정을 결정한 경영진도, 자동화를 밀어붙인 대표도 화면 밖에 있어요. 화면 안에는 실직자들끼리의 경쟁만 남고, 만수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죽여요.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옆자리의 경쟁자가 맞는 걸까요? 그 경쟁에서 이기고 나면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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